예정보다 1주일 일찍 생리가 시작했다.
기존에 계획했던 모든 일정이 어그러지고 병원을 가야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시험관 1차가 비임신으로 종결되고 마지막으로 진료를 받았던 날이 생각났다. 당시, 집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어서 당장 2차 도전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 구구절절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몸을 좀 만들고 4월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나의 선택은 담당의사 선생님의 뼈 때리는 조언으로 돌아왔다.
"매일같이 술 마시고 엉망으로 사는 20대랑 관리 잘 한 40대 중에서 누가 더 임신이 잘 되겠어요?"
"산모 나이가 적지 않아요. 적어주는 날짜에 자연임신 한번 시도하시고, 다음번 생리 시작하면 바로 오세요."
다 맞는 말인데, 괜시리 서글펐다.
더없이 치열하게 일하고 마음껏 즐기며 살았던 20~30대 시절에 대한 세금을 지금 내는 건가 싶은 마음도 들고, 피치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런 것인데 절대적인 신체나이에 쫓겨서 혼나고 있는 상황이 억울하기도 했다. 결국, 병원 건너편 '청와옥'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편을 만나자마자 순대국밥을 앞에 두고 펑펑 울었던 1월의 기억..
이번에 가면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한 소리 듣고 시작하겠구나 생각하며 진료 예약을 위해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기존에 담당하시던 선생님께서 퇴사하셔서 주치의 변경을 해야 한다고 안내하시는 것이 아닌가. 머리가 복잡해서 통화를 종료하고,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더니 기존 담당 선생님이 이동하신 병원 정보가 나왔다. 교통편을 고려하면 '미래와 희망'보다 집에서 다니기 더 편할 것 같아서 잠시 고민했지만, 당장 진료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난임지원 서류부터 다시 다 챙기고 새로운 환경에서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새로운 선생님과 다시 시작해보자는 마음으로 시험관 2차도 '미래와 희망'에서 진행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두근거림과 긴장이 공존했던 진료시간.
시험관 1차를 종결하면서 2차는 난자 채취 개수를 늘리기 위해 호르몬 주사를 추가해보자고 하셨는데, 새로운 담당 선생님은 기존 진료내역을 보고 몇가지 질문을 하시더니 예전에 맞았던 주사에서 용량을 늘려서 진행하겠다고 하셨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생리량이 많아서 초음파 진료는 다음으로 미루고, 주사와 약 처방을 받고 돌아왔다.
Day 1 | 생리 둘째날 / 병원 방문 고날 에프펜 900IU(450*2일) 2개 - 카트리지가 들어있는 프리필드펜+ 1회용 주사침을 교체하여 사용 페마라정(레트로졸) 처방 → 1일 1회 2정*5일 (pm 9:00~11:00) |
병원 V |
고날 에프펜은 난포자극호르몬 주사제로, 다수의 난포를 성숙시키는 목적으로 사용한다. 생리 2~3일차부터 배꼽 아래쪽에 주사를 놓는데, 나는 매일 좌우를 번갈아가면서 맞았다. 시험관 1차 때는 900IU 용량을 300씩 3일에 걸쳐서 투여했고, 2차는 450씩 2일로 세팅하여 4일동안 주사 2개를 맞고 다음 진료를 보기로 했다. 배란유도제 페마라정은 하루 1회, 2알씩 5일을 먹으면 끝!
매일 일정한 시간에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나는 남편의 퇴근시간에 맞춰서 21시 30분으로 정했다. 깨끗하게 손을 씻고 수술방 의사에 빙의해서 경건하게 주사를 든 남편은 언제나 웃음을 준다. 처음 주사를 놓을 때는 주사침으로 배를 찌르기만 하고 약물 투여는 안하는 사고를 치기도 했지만, 이제 여러번 하다보니 수간호사 선생님처럼 배를 찰싹 때린 다음에 주사를 놓을 때도 있고 아주 조금씩 요령이 생기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다 떠나서 그냥 둘이 함께 하는 과정에서 힘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고 덤볐던 1차보다 확실히 두려움은 덜하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끝까지 잘 해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앞으로의 과정도 담담하게 기록해보겠다. 오늘은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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